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포스 2세 (문단 편집) === 암살 === 기원전 336년 10월, 필리포스 2세는 올림피아스의 남동생 [[알렉산드로스 1세 에페이로스]]와 올림피아스의 딸인 클레오파트라의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마케도니아 왕국의 고대 수도인 베르기나로 갔다. 그는 극장에 들어선 뒤 그리스 외교관들과 잡담을 나눴다. 그런데 7명의 경호원 중 한 사람인 오레스테스의 파우사니아스가 달려들어 갈비뼈를 검으로 찔러버렸다. 필리포스 2세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파우사니아스는 즉시 탈출하여 근처에서 말을 타고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에게 가려 하다가 경호원들의 칼에 찔러 죽었다. 이후 기병대 장교인 헤로메네스와 아르하바에우스 형제가 파우사니아스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서 두 사람은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자신의 스승 [[플라톤]]과 함께 서양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이자 마케도니아 궁정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파우사니아스가 아탈로스와 그의 친구들에게 기분이 상했기 때문에 필리포스 2세를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우사니아스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단독 범행이라는 그의 주장은 당대부터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가 인용한 클레이타르코스의 주장에 따르면, 파우사니아스는 필리포스 2세를 사랑했지만, 그가 다른 젊은 남자 파우사니아스에게 관심을 돌리자 질투심을 품었다. 그는 젊은 파우사니아스를 조롱하여 전장에서 목숨을 던지게 했고, 젊은 파우사니아스의 친구 아탈로스는 이에 분노하여 공식 만찬에서 오레스테스의 파우사니아스를 취하게 한 뒤 강간했다. 파우사니아스가 필리포스 2세에게 항의했지만, 왕은 아탈로스가 아시아에 나가 있고, 최근에 그의 조카와 결혼도 한 터라 아탈로스를 건드리기보다는 파우사니아스를 경호원으로 승진시키는 것으로 달래려 했다. 이에 파우사니아스는 손상된 명예를 치유할 기회를 주지 않은 왕에게 반감을 품고 암살했다고 한다. 다른 역사가들, 특히 로마 역사가 [[유스티누스(역사가)|유스티누스]]는 알렉산드로스와 올림피아스가 음모를 주도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유스티누스의 기록에 따르면, 올림피아스는 파우사니아스의 참수된 머리에 황금 월계관을 씌우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다수의 현대 학자들 역시 알렉산드로스와 올림피아스가 암살에 깊게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당시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는 필리포스 2세와의 사이에서 딸 에우로파와 아들 카라노스[* 다른 왕비 소생이라는 설도 있다.]를 낳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가 마케도니아 사람이 아닌 반면에, 그녀가 낳은 아이는 부모 모두 마케도니아인이므로,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날 수 있었다. 더욱이 올림피아스가 강제 이혼당하고 결혼식에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진 후 망명까지 했으니, 비록 일시적으로 화해했다고 해도 이대로 가면 모든 걸 잃어버릴 거라는 불안감을 품었을 것이다. 다만 그와 올림피아스가 필리포스 2세 암살을 진두지휘했음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는 없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가 암살당한 뒤 군대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후, 필리포스 2세에 의해 왕위에서 밀려난 뒤 조용히 지내고 있었던 사촌 형 [[아민타스 4세]]를 처형하고, 결혼식에서 '적법한 후계자' 운운한 아탈로스와 일가족을 처형했다. 어머니 올림피아스도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에게 자살을 강요해 스스로 목을 매어 죽게 했으며, 에우리디케의 자식들에게 손수 독을 먹여 죽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